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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카드와 거리

어제 버스를 타고 집에 다 와갈 무렵, 중년으로 보이는 여성분께서

버스를 내리려고 교통카드를 찍으려 하고 있었다.
그러나 지갑에 카드를 여러장 넣어둔 탓인지, 단말기는 "카드를 한 장만 대주세요"라고,

애써 억양을 신경쓰지만 감정 없는 말투만 되풀이했다.
몇 번이나 낑낑대시며 단말기에 바짝 붙이며 대는 것을 반복하고 나서야 그분은 버스에서 내릴 수 있었다.

사람들은 보통 이런 상황이 되면 당황하며 카드를 열심히 붙였다 떼는 것을,

때로는 신경질적으로, 될 때까지 한다.
하지만 나는 사실 잘 찍히는 방법을 알고 있다.

카드를 완전히 붙이는 것보다는 살짝 떨어진 상태에서 인식이 더 잘된다.

(그렇다고 애먹는 사람마다 붙잡아서 잘 찍히는 방법을 일일이 설명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그런데 어쩌면 이것은 마치 인간관계와 닮아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바짝 붙어있어도 인식할 수 없는 교통카드처럼, 어떤 사람과 늘 붙어있고 일거수일투족을

신경 쓴다고 해도 그 사람을 다 알 수 없다. 어쩌면 오히려 갈등만 생길 수도 있다.

생각해보면 나는 다른 사람과의 거리에 유독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 같다.
부모님의 사랑을 받으며 자랐지만, 때로는 나에게 과도하게 신경써주실 때나

간섭을 받는다고 느끼면 기분이 좋지 않다.
일을 할때에도 마찬가지로 이래라저래라 간섭당하는 것보다 차라리 혼자 하는 게 편하다.

내가 너무 극단적으로 개인주의적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적당한 거리를 찾아 보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거리가 너무 멀면 다른 사람을 서운하게 하고, 너무 가까우면 간섭하고 갈등이 생긴다.
'적당하다'는 말이 가장 사람마다 다른 만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은 어렵다.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으로 생각해본 것은 각자 자신에게 필요한 거리를 주변에게 미리 알리고,

양해를 구하는 방법이다. 서로의 차이를 미리 알고 감정적인 다툼을 줄여나가는 것이다.

여태까지 상대방이 내가 생각하는 '적당히' 먼 거리를 조금이라도 넘어서려하면,

알리거나 이야기해보려고 하지 않은 채 무책임하고 치사하게 도망쳤다.
그 결과로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었고,

그 사실은 나에게 다시 상처로 돌아와 그 죗값을(많이 부족하지만) 치르고 있다.

내 주변의 좋은 사람들을 위해서 "적당한 거리"에 대해 자주 이야기를 나눠야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매일 쓰는 교통카드를 보며, 생각하고 반성한다.

스누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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