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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퇴근길에서 버스는 사람들을 흡수하고 뱉어낸다. 따뜻한 햇살보다 먼저 일어나 어두운 세상에서 굴러가며 무표정한 모습으로 사람들을 집어삼킨다. 버스 안에서 사람들은 버스와 동화되어 표정이 사라진다. 마스크 뒤로, 얼굴 뒤로. 그러고는 버스는 눈부시도록 밝지만 더 어두운 곳에서 사람들을 토해낸다. 우수수 사람들은 쏟아져나와 또 다른 곳으로 집어삼켜지기 위해 발걸음을 재촉한다. 햇살이 모습을 보이기 전에 차디찬 잿빛의 마천루들은 사람들을 흡입한다. 그리고 햇살이 없어지고 사람들이 영혼을 다하면 다시 뱉어낸다. 그러면 다시 버스가 그들을 싹쓸이하고 어둠으로 돌아가 사람들을 게워낸다. 매일매일 누구도 소화하지 못하는 잔혹한 하루가 반복된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 김영하 저. 삶으로부터의 죽음이라는 해방 이 책의 주인공인 '나'는 의뢰인의 이야기를 듣고 그것을 토대로 소설을 쓰고 자살을 도와주는 일을 한다. 주인공은 의뢰를 받는 것이 아니라 소설을 쓸만한 이야기를 가진 사람들을 직접 찾으러 다닌다. 그 의뢰인 중에 한 명은 유디트(세연)이다. 그녀는 모든 일에 냉소적인 반응을 보이고 대화조차 이어나가려 하지 않는다. 그녀는 마지막 죽음을 선택할 때가 돼서야 자살하는 방식에 대해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다. 두 번째 의뢰인은 미미라는 퍼포먼스 예술가이다. 그녀는 그전까지 자신의 모습이 영상으로 담기는 것을 두려워했지만, 비디오 아트를 기획하는 C에게 처음으로 자신이 예술행위를 보이는 모습을 찍는 것을 승낙한다. 하지만 미미는 그 이후 주인공을 다시 만나 자살을 택한다. 사실 이 소..
남의 불행을 보며 행복을 깨닫는다? 사람들이 흔히들 하는 말이 있다. "너보다 더 불행하게 사는 사람도 많으니까 희망을 가져." "이걸 하고 싶어도 못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감사한 줄 알아." 본인이 불행하다는 생각에 빠져 우울할 때 주변 사람들에게 털어놓으면 들리는 말이다. 물론 말하는 사람은 상대방을 위로하려고 한 말이겠지만 '과연 이 말이 불행한 사람을 위한 말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 만약에 그렇다면 비교당하는 가장 불행한 사람들은 위로해줄 방법이 없는 게 아닐까? 불행의 순위를 매겨 상위권에 속한 사람들은 비교당한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오히려 더 큰 상처가 되는 것은 아닐까? 실제로 내 경험을 돌이켜봤을 때, 저런 말을 듣고 정말 나보다 불행한 사람을 생각하며 '나는 이만하길 정말 다행이다'고 느낀 적은 한 번도 없는 것 같..
올림픽의 눈빛들 얼마 전 다사다난했던 도쿄 올림픽이 막을 내렸다. 2년마다 열리는, 어쩌면 익숙해질 법한 행사임에도 불구하고 매번 경기를 치르고 있는 선수들을 TV로 볼 때마다 느낌이 새롭다. 특히 이번 올림픽은 특수한 상황이다보니 유난히 더 그런 것 같기도 하다. 각국의 선수들은 마스크를 쓰고 경기장에 등장한다. 그래서 긴장한 표정이나 결의에 찬 표정, 때로는 기대가 넘치는 표정을 직접적으로 볼 수는 없지만 눈빛만으로 그 열의를 느낄 수 있다. 특히 도마 종목에서 그 눈빛에 전율을 느낄 수 있었다. 지면에서 도약해서 최대한 많이 돌고, 아름답게 착륙하기 위해서 달려가는 모습은 선수마다 다르지만 그 눈빛은 모두 같다. 허공에 있는 수 초내로 결과가 정해지는 몇 년간의, 혹은 평생의 노력을 헛되이 하지 않기 위해 이를 악..
사람은 이기적이다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출퇴근을 오가면서 느끼는 것이 있다. 사람들은 모두 이기적이라는 것이다. 지하철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 뛰어가며 지나가던 사람을 치는 사람들, 앉아서 집에 가기 위해 정류장에 버스가 오기도 전에 차도로 나가 맨 앞에 자리 잡는 사람들, 뒤쪽 문으로 내리는 사람과 엉켜 억지로 타려는 사람들, 편하게 있기 위해서 통로 근처에 서있어 이동을 방해하는 사람들, 모두 자신을 위해 다른 사람들을 희생시키는 행동이다. 출퇴근 시간에 보이는 사람들의 이런 행동들이 어느 때보다 인간의 본성을 노골적으로 보여주는 듯하다. 물론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나로서도 앞서 언급한 행동들은 안 한다고 단언하기는 어렵다. 다른 사람들이, 혹은 내가 이기적인 몸짓을 펼칠 때마다 눈살을 찌푸리면서도 인간의 본능이기에..